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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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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43 니뇨안쌍고등어
직업:  좀비왕 재회 노동력: 29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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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에반과 분대원들은 메인 홀에 도착했다. 녹아내린 출입문 너머로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 나타났다. 꽤 규율이 엄격한 에반의 분대였지만, 그 압도적인 광경에 여기저기서 호기심이 가득한 질문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메인 홀의 바닥은 운동장 하나는 족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었고, 특이하게도 정 12각형의 형태였다. 메인 홀의 중앙에는 지상과 메인 홀, 그리고 유적 더 깊은 곳을 이어주는 원기둥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고, 세 개의 투명한 스크린이 이 기둥을 감싸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이 스크린의 방향대로 메인 홀이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각각 끝에는 아주 거대한 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메인 홀은 천장이 아주 높았는데, 그 이유는 메인 홀이 이 유적의 중심부로, 유적의 다른 장소들을 서로 이어주는 광장 같은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벽면에는 층별로 복도가 설치되어 있어 이 공간이 다른 공간들을 이어주고 있었으며 설치된 복도는 총 10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분대원들이 지나온 복도는 4층에 있는 것이었다.


원기둥형 구조물을 중심으로 옛사람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계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고, 또한, 유적 탐사대의 것으로 보이는 장비와 조명도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발굴 현장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와, 정말 답도 없이 크군요, 여기는.”


팽이 말했다. 그의 벌어진 입은 좀처럼 다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그의 소감처럼 메인 홀은 엄청난 규모였다.


“분대장님! 저기 바닥에 중계기와 장비들이 보입니다. 탐사대 물품 같은데요? 어서 가봅시다.”


아도니가 말했다. 그들은 복도에 나 있는 계단을 통해 메인 홀 바닥으로 접근했다. 다행히 층계는 모두 멀쩡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조립식 간이 막사들과 각종 장비가 놓여 있는 장소가 나왔다. 아도니의 말처럼, 장비는 확실히 유적 탐사대의 것이 맞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흩어져서 뭐라도 찾아봐! 이건 확실히 유적 탐사대의 장비가 맞아.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증거니까, 뭐든 찾아내라고! 아도니와 팽은 저기 기둥 뒤편을 찾아보고, 드레이코와 플린은 간이 막사들을 뒤져봐. 티미, 마야, 켄, 주변을 다 뒤져봐.”


에반은 분대원들에게 주변을 정찰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한편 반은 내려오자마자 중계기로 달려가 장비를 검사하고 있었다. 에반은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판단하고, 반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맙소사, 이거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이는데, 안에 회로가 다 탄 것 같습니다. 휘유, 냄새가 장난 아닌데요?


급히 중계기를 검사하던 반이 말했다. 그는 중계기 내부를 에반에게 보여줬다. 그의 말처럼 기판에서는 연기가 나고 스파크가 튀고 있었는데, 기계에는 문외한인 에반이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손상이 심했다.


“익, 진짜 냄새가 장난 아니군. 어떤 이유로 이렇게 고장 난 거지?”


“글쎄요, 딱 보기에는 과전압이 걸린 것 같은데…. 회로를 터뜨리는 전략 무기를 사용한 것일 수도 있고요. 최근 소형 EMP 발생 무기가 상용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요. 뭐, 그것 말고도 방법은 많죠. 또….”


중계기가 의도적으로 파괴된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유적 탐사대가 제 발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습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더 무게가 실렸다. 사실 에반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직감이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쉘터 바깥의 무법 지대는 어떤 이상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괴이한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옛사람들의 유산이 잠들어있는 유적들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한 곳은 아니었다.


“분대장님! 여기 혈흔이 있습니다! 지금 분대장님이 있는 곳에서 원기둥을 돌아 바로 건너편으로 오십쇼!”


건너편에서 팽이 무전으로 그를 불렀다.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인지 팽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미세하기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 찾았다는 생각에, 에반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먼저 뛰어가자 다른 분대원들도 그를 쫓아 달려갔다.


“여기 보십시오. 유적 탐사대가 쓰던 장비들과…. 흔적이 있습니다.”


팽이 말했다. 거대한 원기둥과 스크린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곳에서 참혹한 광경이 나타났다. 시체는 남아있지 않았지만, 혈흔과 인체 일부였던 것들이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사방에 퍼져 있었다. 


또한, 발굴을 위해 들여온 몇몇 장비들은 거대한 힘에 짓눌린 듯 형태가 크게 변형되어 있었다. 마침내 나타난 흔적은 그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시사하고 있었다. 에반은 뱃속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다른 분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우, 이 조명 좀 봐. 쇠기둥이 거의 엿가락처럼 휘어졌는데?”


켄이 공사장용 조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경이 20cm는 넘어 보이는 굵은 몸체가 크게 휘어져 있었다. 아마도 아주 강력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건, 상상 이상이군. 아도니, 빨리 회사에다 상황 보고 해. 엄청난 혈흔을 발견했다고…. 플린! 어서 이 흔적들을 조사해.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군…. 림 하사? 응답해!”


에반은 아도니에게 회사에 연락하도록 지시한 후, 무전으로 림을 호출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수색대장님. 무슨 일이라도?”


“여기 혈흔이 발견됐다.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아."


“혈흔 정도로 그러십니까? 대규모 실종 사건에 아무런 흔적도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는데 말입니다.”


“니가 와서 직접 봐. 여긴 한바탕 토마토 축제라도 한 것 같다고. 그야말로 피바다군. 네 말마따나 교전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전혀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하고 위험한 상황인 거지. 일단 어서 합류하도록 해.”


“….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림이 사태를 파악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편, 회사와 교신을 시도하던 아도니는 자신의 단말기가 먹통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 분대장님? 회사와 무선 통신이 안 됩니다.”


아도니가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다가 잘 보고했잖아. 메인 홀에 있는 중계기가 고장나서 그런가?”


에반이 말했다.


“어, 글쎄요. 일단 방금 림 하사님 쪽이랑 통신이 된 걸 봐서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중계기는 보통 송출 가능 범위보다 더 좁게 설치하도록 야전 규범에 되어있거든요. 아마 지상 쪽에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이 대답했다. 만약 그의 말이 맞는다면, 뭔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반은 골치가 아프다는 말 그대로 머리가, 아파져서 이마를 문질렀다.


“림 하사에게 내려오면서 중계기를 잘 점검하라고 했는데, 설마 그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일단 그러면 림 하사에게 지상을 확인해보라고 할게. 반, 일단 어떻게든 본부와 연결할 방법을 알아내 봐. 이것 참….”


“이거, 어쩌면 우리 능력 밖의 일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도니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에반은 무전을 통해 림의 분대에서 두 명을 차출해 지상부의 중계기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십여분 후, 지상으로 간 이를 제외한 림의 분대는 에반의 분대와 합류했다. 에반으로부터 현장의 상황을 전달받은 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게 그 혈흔입니까? 정말, 사람이 몇 명 터지기라도 한 걸까요.”


림이 말했다. 림과 에반은 방금 발견된 혈흔 앞에 서 있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지. 의무병한테 조사를 좀 더 자세히 해 보라고는 지시를 내려뒀어. 나도 이 바닥에서 일한 지 꽤 되었는데 이런…. 끔찍한 현장은 처음이야.”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일단 임시라도 현장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한편, 그들이 합류하여 이것저것 정비를 하는 사이 지상으로 간 림의 분대원들이 중앙 중계기가 작동 불능 상태라고 보고해왔다.


“뭐? 갑자기 왜?”


에반이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중앙 중계기로 전류와 전파가 안 들어오고 있어 비상 전원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유적 내부에 구축된 통신망은 그대로 유지 되겠지만, 도시와의 교신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조치했나?”


“아까 지상으로 갔던 분대원들에게 단파 무전을 이용해 현재 상황을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중앙 중계기를 고치기 전까지는 회사와 실시간으로 교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유적에 어떤 적대적인 대상이 있다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연락책을 유지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고요. 다행히 지상으로 보냈던 두 병사는 별일 없이 오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림은 초조한 목소리로 상황을 나열했다. 에반은 복잡한 상황에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는 노릇, 에반은 그저 이마를 문지를 뿐이었다. 림 역시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뭐라고 답하던가?”


“일단 수색작업을 계속 진행하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휘징 쪽에 파견 가능한 인원이 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수색대 구성하는 것만 해도 무리해서 업무 취소하고 여기로 파견한 상황이니까요. 본사 측에서는 대규모 인력을 파견하기 위해 플루토니움 측과 접선하고 있는 모양이긴 한데, 글쎄요.”


“끙, 이거 추가 지원 없이 수색을 계속하는 건 굉장히 위험할 거 같은데. 요즘 고용 시장이 유연해졌다고 너무 우리 막 대하는 거 같지 않아? 나름 엘리트들인데 말이야.”


에반이 답답하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회사가 그만큼 급박하다는 이야기겠죠. 이번 유적 탐사 건이 얼마나 우리 회사에 돈이 되는지는, 본사 사장님의 사내 방송에서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자주 듣지 않았습니까?"


에반은 림의 대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충 림에게 전달이 끝나자, 에반은 휘하의 모든 대원을 한 자리에 모았다.


“어때, 플린. 조사하니까 뭐 좀 나오던가?”


플린은 헛기침 두어 번을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해 현장을 자세히 조사하진 못했지만, 꽤 특이한 것을 찾았습니다.”


플린은 그렇게 말하며 비닐백에 포장된 샘플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형광 녹색의 점액이 담겨 있었다.


“저기 막사 근처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오염의 위험이 있어서 일단 차폐 용기에 담았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공격자가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히 무슨 종류의 물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에반은 플린이 건네준 샘플을 받았다. 그 점액은 불쾌하게 빛나고 있었다.


“꼭 초록봉 색깔 같네. 흠, 이게 뭘까 도대체?”


“확실하진 않습니다. 어떤 무기일 수도 있고, 어떤 장비의 연료나 윤활유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짐승의 체액일 수도 있죠. 여기 현장에는 장비가 부족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내긴 어렵습니다.”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냐. 어떻게든 알아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에반은 플린에게 다시 샘플을 건내줬다. 그리고 분대원들을 돌아봤다.


“다른 이들은 뭔가 특이한 점 발견한 것 없나?”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거지?’


에반이 속으로 생각했다.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부자연스럽단 말이야. 데이터에 따르면, 이 유적은 탐사대가 발굴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상하고 차단되어있었고, 비등록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상에도 고성능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었어. 도대체 탐사대를 습격한, 이 개 같은 놈들은 어디서 온 거야? 땅에서 솟은 거야, 하늘에서 내려온 거야? 어떻게 흔적을 이렇게나 안 남길 수 있어?”


에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상황이 계속 나쁘게 돌아갔기 때문에, 에반은 조금 날카로워졌다. 20명의 목숨이 그에게 달린 상황에서 이런 나쁜 상황의 연속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에반은 말을 다 뱉은 후에야 속으로 아차 싶었다. 지휘자가 흥분해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불안해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은 사기에 큰 악영향을 줄 것이었다. 에반은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그의 분대원들은 딱히 신경 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그들은 그와 달리 아주 침착해 보였다.


“뭐, 개같은 놈들이면 대충 엉덩이 좀 걷어차 주고 혼내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분대장님? 저희가 언제 실패한 적 있습니까?”


팽이 그의 기분이라도 맞춰주려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에반은 그의 애매한 표정과 어색한 대사에서 걱정과 불안을 읽을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팽과 자신의 분대원들이 자신을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내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 테다. 에반은 기분 좋은 부담감을 느꼈다. 적어도 이들과 함께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에반의 지휘 역량을 믿고 있었고, 지금껏 수많은 작전을 함께 해결해왔다. 그의 말마따나 엉덩이 좀 걷어차 주면 될 일이었고, 일이 직접 터지기 전에 걱정부터 하는 것은 그답지 못했다. 팽의 너스레가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수색대장님, 아직 확실한 상황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수색 자체는 계속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부에서 내려온 명령도 있고 말입니다.”


옆에서 주의 깊게 대화를 듣고 있던 림이 말했다. 그 역시 상황이 나빠도 에반과 함께라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지시가 내려온 마당에 잠자코 있기도 그랬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돈 받은 값은 확실히 해야죠. 성실한 노동자로서.”


팽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지금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상황은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유적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비전투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이겠지요. 우린 다르잖습니까?”


아도니도 거들었다. 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에반은 조금 주저했다. 무언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어느 것이 옳은 판단인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좋아, 그러면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자고. 앞면이면 추가 작전을 수립하고, 뒷면이면 적당히 가는 거다.”


에반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행운의 동전을 꺼내 공중으로 튕겼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이 에반의 손등 위에 앉았다.


“…. 앞이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에반은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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